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심곡사

익산의 풍경

by 포르코 루소 2009. 4. 28. 19:13

본문

심곡사는 미륵산 기슭의 장암마을 위쪽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문성왕(839~856) 때 창건됐다고 하나 이를 뒷받침할만한 유적이나 유물은 없다. 그 뒤 19세기에 중건되었으며, 지금의 사찰은 100여년전 현 위치에서 200m쯤 떨어진 산등성이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근래에 들어와 대웅전을 해체 중건하고 요사를 새로 짓는 등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 심곡사는 동향하고 있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삼성각, 왼쪽에 명부전을 두고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칠층석탑 1기가 자리한다. 그리고 명부전 뒤쪽에 요사가 있고, 사찰에 오르는 입구에 부도전이 있다





이전에 있던 대웅전은 1819년(순조 19)에 만든 앞면 3칸, 옆면 2칸에 맞배지봉의 겹처마를 한 건물이었으나, 1986년에 헐고 지금의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크기는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서, 앞쪽의 기단은 이중 형태이며, 아래 단에 있는 석재는 잘 가공된 장대석이고, 다른 곳에서 사용하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건물은 이익공 형식이고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2분합문이 각 칸에 설치되어 있다.대웅진 안에는 현재 문화대자료 제152호로지정보호되고 있는 목조삼존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삼존불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각각 모셨는데, 조선시대 앙식이기는 하나 제작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외에도 삼존상 뒷면에 아미타 후불탱화와 영산회상도, 지장보살 후불탱화가 모셔져 있다. 


신라 무염대사가 처음 지었다는 심곡사의 대웅전 앞마당에 자리한 칠층석탑으로서, 원래는 심곡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가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한다.

1층의 받침돌 위에 7층의 지붕돌을 올리고 맨 위에는 작은 연꽃봉우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높다란 느낌을 준다. 바닥돌 위에 있는 받침돌에는 엎어놓은 모습의 연꽃문양과 위를 향한 모습의 연꽃문양이 아래 위로 각각 새겨져 있다. 탑몸돌과 지붕돌이 1매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몸돌에는 기둥 모양이 생략되었다. 지붕돌 받침은 3개로 표현되어 있고 경사가 완만한 지붕돌의 처마끝은 모서리에 가서 살짝 들어 올려져 백제 탑의 전통을 이어오는 면이 보인다.

탑의 일부가 나중에 고쳐진 흔적이 있고 받침 부분과 탑몸 부분이 서로 조화되지 못한 점이 있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볼 때 고려시대 말∼조선시대 초기 석탑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받침부분에 나타난 고려시대 탑의 양식과 지붕돌 받침에 나타난 조선시대 탑의 양식, 지붕돌의 백제탑 양식을 모두 간직하고 있어 익산 지역에서 석탑 변화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대웅전 한켠에서 만난 우리민들레...요즘 서양민들레에 치여 좀처럼 만나기 어려워 진 탓인지 봄바람에 님을 본 듯 반갑다.


그리 높지 않은 미륵산 뒷켠임에도 멀리 산줄기가 보여 눈이 시원스럽다. 나무에 살짝 가린 건물은 해우소이다. 아래서 올려다 보면 앉은 자리며 생김생김이 제법 운치가 있는데 해우소에 이런 멋을 부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관련글 더보기